백두대간 / 진부령에서 부치는 글...

2017. 6. 19. 13:18山/산행 일기

 

 

 

 

 

백두대간, 진부령에서 부치는 글

 

 

 

힘들었지만, 행복한 길을 걸었습니다.
고통스러웠던 길도, 걸었고
한없이 즐거웠던 길도, 걸었습니다.
이러한 고통과 행복 속에서, 우리는 한걸음 한걸음, 어떠한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목적지까지 왔습니다..
 
걷다 보니,
꼭, 한번 다시 걷고 싶었던 길도 있었고
머무르고 싶었던 길도 있었으나, 혼자의 길이 아니기에, 내려서야만 하였던, 아쉬운 구간도 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면,
지나온 길들이 하나의 큰 줄기 되어 가슴속에서 일렁이고 있습니다.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 모든 구간이 스크린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 스쳐 지나온 길에서,
불가항력 밟아야 했고,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나약한 초목들과
편히 쉬는 시간, 어둠과 고요를 깨트리며 지날 수밖에 없었던,
행동들을 안본듯, 못본듯 이해하며 곱게 보내주신, 산속의 모든 주인에게,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을 담아, 지나가는 구름과 바람 편에 띄워보냅니다.

 

잠시,

추억하여 봅니다.

 

2015년 05월 02일
성삼재에서 첫발을 내딛던 날,
진부령에서 만세를 부를 때도, 이 마음과 꼭 같아야 한다고, 가슴속에 새기며 걸었습니다.
 
2016년 03월 05일
종일 안개와 빗속을 걸었던, 희양산 구간에서는
앞 못 보는 인생, 쉬어갈 줄도 알아야 한다고 여유도 가졌었고
몇 번이나 밧줄을 바꾸어 잡아야 하는 직벽 구간에서는, 험난한 인생길, 헤쳐나가는 인내를 키웠습니다.

 

2016년 05월 21일
일출을 바라 보며, 속리산 바위틈을 지날 때,
욕심 가득한, 나의 마음을 내려놓자고 약속하였고,
혹여, 나로 인하여, 상처받은 마음은 없는지, 성찰하는 기회도 가졌습니다.
 
2016년 07월 16일
평생 맞은 비보다, 더 많은 비를 맞으며, 대간의 중간지점을 통과하던 날.
대미산 황장재 구간에서 일어난, 산우의 실족 사고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의연하게 대처하였던, 우리 동지들의 모습에서 단합과 희생정신을 배웠습니다.
 
2016년 08월 06일
바람 한점 없던 혹서기, 벌재에서 흙목까지 걸어야 할 때,
물을 마시는 것도, 시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오늘 다 걷지 못한 구간은, 다음에 걸어도 된다는, 마음의 평정도 찾게 되었습니다.
 
2016년 09월 03일
비바람에 굴하고 탈출하였던 소백산 구간에서는
비와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르면, 신발 속까지 스며든다는 것을 경험하였고
불어터진 발임에도 불구하고, 목적지까지 걸을수 밖에 없었던 극한을 체험하기도 하였습니다.

 

2017년 04월 01일
춘설이 쉼 없이 내리던 진고개 구룡령 구간
어둠과 폭설 속에서 지워진 길을 찾아 헤매야 하였던 시간들
그칠 줄 모르는 폭설에도 아랑곳 않고, 마냥 동심이 되어 길고 험준하였던 구간을 끝낼때 까지.
고통의 시간은 더디게 흐르는 것이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이니 즐기자, 라는 문구를 잠시도 지울수 없었습니다.

 

2017년 05월 06일
어둠 속에서 위험하였던, 점봉산 초입의 만물상 구간에서는
팔 다리가 짧으면, 서두르지 말고 시간이라도 길게 써야 한다는 총량의 법칙을 알았으며
앞서가는 자가, 뒤따라오는 자에게 불빛을 배려해주는 아름다운 모습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17년 05월 20일
공룡을 지나, 설악동으로 하산할 때
무릎이 아파 오면, 쉬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배웠고
발바닥이 뜨거워지면, 목적지에 다다른 것 이니, 조금만 더 인내하자 라는 다독임도 정겨웠습니다.
 
2017년 06월 03일
황철봉 너덜을 오를 때
짧은 다리의, 한계를 느끼기도 하였으나
울창한 원시림을 지날 때는, 고개를 숙여야 하는 수고를 덜하여도 된다는, 감사도 알게 되었습니다.

 

대 장정의, 마지막 구간 까지, 거침없이 달려온 자신에게 묻습니다.
백두대간, 과연 무엇이었던가?

 

돌이켜 살 수 없는 우리 인생
내가 살아온 삶처럼, 험난하였던 역경의 길이였으며,
내가 살아갈 여정에, 운명처럼 남아있는 길이리라 생각하며
한걸음 한걸음, 소홀하지 않고, 가슴가득 뜨거운 불꽃을 담아 걸었노라 이야기 하겠습니다. .

 

이제,
추위와 어둠 속에서, 대문을 나서던 서글픔도
모두들 잠자리에 드는 시간, 홀로 버스를 기다리던 처량함도
산중에 홀로 앉아, 나는 누구이고, 왜, 이러고 있는가를 생각하였던 수많은 상념들도
모두, 추억의 한 페이지로 기억될 것입니다.

 

열정의 길을 걸어온 당신에게
어디선가, 허허로운 바람이 불어와
젖어있는 당신의 등을, 스치며 지나리라 생각합니다.
당신의 무거운 등짐을, 벗어 놓으십시오.

 

평생 잊지 못할, 기억 속의 동지 여러분!!!
고맙고 사랑합니다.